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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류 태평무

박재희의 생애와 예술활동

 

 박재희는 1950년 강릉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린 시절을 춘천에서 보냈다. 유년 시절부터 춤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박재희는 전통춤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 계기가 한영숙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박재희는 1971년 6월 서울국립극장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에서 태평무 춤을 처음 보았다. 태평무를 모르는 상태에서 강선영과 한영숙이 추는 태평무 공연을 보고 그때까지 박재희가 알고, 보아왔던 춤과는 전혀 다른 반주음악과 색다른 춤사위에 감흥을 느꼈다. 태평무를 꼭 배워야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하고 바로 실천에 옮기어 한영숙을 찾아가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영숙 역시 박재희를 눈여겨보고 전수자로 삼았으며, 이는 박재희에게 있어 전통춤의 예술성과 철학을 온전히 체득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한영숙 스승과 박재희 제자

 

 박재희는 한영숙을 단순한 스승 그 이상의 존재로 회상한다. 춤을 가르쳐준 선생님이자,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 정신적 지주로 받아들었다. 특히 한영숙은 제자에게 있어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으며, 춤을 넘어선 인격적 감화의 대상으로 자리한다. 한영숙은 제자를 대함에 있어 따뜻하고 인자했으며, 늘 식사 자리에 함께할 정도로 인간적인 유대감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사적인 교류는 단지 예술 교육을 넘어서, 삶의 태도와 철학까지 전달하는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예술가로서의 한영숙은 엄격하면서도 자유로움을 인정하는, 모순적이지만 깊은 교육철학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박재희는 한영숙의 교육 방식을 이렇게 회고한다.

 

“춤의 법도는 엄격하게 강조하셨지만, 그 안에서는 제자의 개성과 감성을 존중하셨어요.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아량과 자유는 정말 큰 그릇에서 나오는 거죠.”

 

 이러한 예술적 자유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정신과 정서’를 전승하는 방식이었다. 박재희는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태평무의 정신, 특히 단아함과 절제미, 고고한 기품의 표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정신의 계승’이라 표현하였다. 춤사위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그 내면의 흐름과 호흡, 예술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영숙의 철학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또한, 박재희는 한영숙이 일대일 지도를 통해 전통춤의 깊이를 가르치던 스승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안에는 춤의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내적인 흐름과 호흡 조절’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한 춤꾼의 태도를 길러주는 방식이 담겨 있었다.

 

 박재희가 말하는 춤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라 한다. 좋은 춤 곧 진실한 춤을 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서 그 마음이 자연을 닮아가고 비로소 자신을 비울 때 무아의 경지에 이르면, 그때 추어지는 춤이 전통춤의 정점을 이룬다고 하였다. 또한 전통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하나의 방향을 설정해서 나아가라는 뜻으로

 

‘서두르지 않으나 게으르지 않게, 한걸음 한걸음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라’는 예술정신을 제자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한영숙은 자신이 직접 창조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성준의 태평무를 더욱 예술적으로 정제하고, 자신의 미감을 더해 전통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박재희는 이 태평무를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유연함을 허용한 춤”으로 평가하며, 한영숙의 계승 철학은 ‘원형의 보존’‘개성의 존중 사이의 균형을 모범적으로 실현한 사례라고 하였다.